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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손원일 선교재단

   손원일 선교센터 역사

손원일 선교센터 역사

 

 

1970년 4학년 때 동기생 몇 명이 당시 김선기 수학교관과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사관생도 생활이 아주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에 불침번 1시간을 서도 하루 종일 교실에서 졸게 된다. 그때 기도의 동지들이 깜깜한 바다를 비추며 복음으로 길을 인도하자는 뜻으로 “옥포등대 클럽”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한 결심이지만 “십일조 생활, 술 담배 금지, 해군복음화에 헌신” 세 가지를 다짐했다.

 

 그러나 소위로 임관하고 나니 초급장교 생활이 너무나 바쁘고 힘들며 수많은 유혹이 뒤따라 해군복음화에 대한 헌신은 고사하고 교회출석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10개월간 어머니 뱃속에서 잘 키워 태어나자 길바닥에 버린 것과 같았다. 1973년 마침 해사교회에서 김선도 목사님의 부흥회가 있었고 그 때 동기생과 몇몇 후배들이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공동생활을 하기로 했다. 해사 입구에 있는 일본 적산가옥 2층 방 네 개를 얻어 공동생활을 하며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 세미나 등을 통해 신앙과 소명의식을 키워왔다.

 

 이렇게 시작한 형제들이 28명으로 늘어 공간의 한계를 느꼈다. 그 때 형제들이 사관학교 예배에 참석하여 후배들을 지도했는데 당시 해사교회는 작고 협소하여 50명 정도밖에 수용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도들이 적은 봉급으로 벽돌 10장씩 건축헌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용기 목사님이 감동을 받아 해사교회를 건축해 주고 있었다. 손 제독님의 부인인 홍은혜 권사님이 옥포다락방 모습을 보시고 조용기 목사님께 다락방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해사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조용기 목사님은 거절을 했고 만남도 회피했다. 그때 28명이 28일간 철야를 했다. 밤10시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한사람씩 완전히 밤을 새며 철야기도를 했다. 28일 철야기도가 끝나는 날 해사교회 헌당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조용기 목사님이 설교중에 다락방을 지어 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며 선포를 하셨다. 

 

그러고서 1983년 3월 준공을 하고 옥포 다락방에서 원일 다락방으로 변경되었다. 그동안 초급간부들이 훈련을 받아 작은 목자 600여명, 목사, 장로, 안수 집사 등이 많이 배출되어 해군선교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제 37년이 지나 너무 노후하여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 재단법인 손원일 선교재단을 설립하고 신축을 하기로 했다. 손원일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매일 낮 12시에 얼람을 맞춰놓고 기도를 하고 있다. 4층건물 연건평 800평으로 약 60억원 규모로 신축을 할 예정이며 여기에는 창군기독역사관을 설치하여 손정도 목사님, 손원일 제독과 홍은혜 권사 기념관, 김대식 사령관과 김성은 사령관, 해군선교 70년사도 설치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해병대 부대가 있는 포항과 백령도, 각 함대가 있는 동해 ,인천 부산 등에 분소도 설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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